2010년 6월 10일 목요일

방안의 코끼리

방 안의 코끼리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조영민

영어 표현에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것이 있다. 방 안에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 앉아 있으면 그것이 어찌 눈에 띄지 않겠는가? 즉, 너무나 분명하고도 명확한 명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으니, 애써 사람들이 이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것을 빗대어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른다. 당뇨병 연구를 하면서 이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게 된다. 4월 중순에 휘슬러에서 당뇨병 관련 기초 연구를 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서 컨퍼런스를 가졌다. 최신의 연구 기법과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열정적으로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였는데, 이 분야 과학의 발전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임상 진료에 적용되는 수준까지 개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연구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기초 과학의 토대 위에 임상 의학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기초 연구의 끝없는 도전으로 인류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온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학회장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불현듯 떠 올랐다. 당뇨병이라는 병의 발생 메커니즘이 워낙 복잡하고 그 기저에 있는 실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자들은 어느 한 부분을 부여 잡고 그것이 전체인 양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배를 더듬는 사람은 “벽”이라고 말할 것이고, 다리를 더듬는 사람은 “기둥”이라고 말할 것이며, 코를 더듬는 사람은 “호스”라고 말하고 있다. 잠시 코끼리 만지는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다면 “방 안의 코끼리”는 과연 무엇일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 방 안의 코끼리는 바로 다름 아닌 “생활 습관”이다. 1950년대 말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처음 당뇨병 진료를 시작할 당시 1년에 환자 수가 5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한국 성인 인구의 10%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적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당뇨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당뇨병의 폭발적 증가를 유도했을까? 필자가 국내 통계 자료를 통해 고찰한 결과 국내총생산의 증가와 발 맞춰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가? 잘 살게 되면서 당뇨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방 섭취율이 증가되는 것이 연관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칼로리 음식 및 서구화된 식생활과 맞물려 당뇨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승용차 보유 대수의 증가 및 TV 시청의 증가와 연관이 있었다. 이것은 운동 부족이 당뇨병 발병과 관련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유전자는 최근 몇 십년 사이에 절대 변화하지 않았다고 본다. 결국 환경의 변화, 생활 방식의 변화가 우리 국민을 당뇨병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통해 당뇨병의 발병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고 한다. 이러한 “신약”의 타겟은 무수히 많이 밝혀져 있다. 비만과 관련된 것, 인슐린 분비와 관련된 것, 인슐린의 작용 감수성과 관련된 것 등등 수많은 타겟들이 기초 연구 결과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 안의 코끼리”인 생활 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한 타겟이라고 말하면 별로 달가와 하지를 않는다. 의사들도 사실 크게 달가와 하지를 않는다. 삼척 동자도 아는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의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 진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환자의 생활 방식, 즉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담배가 해로우니 끊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환자가 담배를 바로 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생활 습관은 어차피 고치기 어려운 것이니, 당뇨병에 걸릴 사람의 습관을 고치는 대신 약을 먹도록 하여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쉬우면서도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리 추구 수단이자 재화 창출 수단이 되기 때문에 매력적이어서 이런 연구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분들에 대해서 전혀 악의는 없다 (물론 필자도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탄탄한 기초 과학의 토대 위에 임상 의학이 꽃을 피우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이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에 발표 된 당뇨병 예방 연구 결과를 보면,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위 “내당능 장애”라는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체중 조절, 운동, 식이 요법 등을 근간으로 하는 생활 습관 개선을 시행한 그룹과 당뇨병을 예방할 것으로 기대되는 약을 투여한 그룹을 비교해 보면 생활 습관 개선을 시행한 경우에 당뇨병을 약 60%에서 예방할 수 있었던 반면 약을 투여한 경우는 약 25-30% 수준에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생활 습관 개선 그룹에 속했지만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는 대부분 체중조절, 운동, 식이 요법 등을 잘 수행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자, 이제 당뇨병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 분명하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명확하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게 하기 위해 의사 뿐만 아니라 정부, 사회 단체, 기업 등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제2의 금연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제2의 술잔 안 돌리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 행동 과학, 인지 과학을 하는 과학자 혹은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람의 생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기초 연구의 결과로 마법의 치료제를 개발하게 되는 날에는 병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세상이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어렵겠지만, 우리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건강 문제에는 무엇이 “방 안의 코끼리”인지 오늘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개인에 따라 “술”, “담배”, “과식”, “운동부족” 등등 코끼리들을 방안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애써 무시하시지 마시고 그 실체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시기를 당부드린다.

댓글 1개:

  1. 저도 정말 동의합니다. 당뇨병 발병 가능한 여러원인들을 연구하기보다는, 지금 당뇨병이 급증하는 진짜 원인에 대한 치료 연구에 더 관심이 갑니다. 생리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기전에 대한 연구는 결국 근본적인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언발에 오줌.... 요즘 관심사는 마약같은 탄수화물 중독입니다. 과자광고금지법안, 학교매점 소다판매금지법안 등에 대해 마리화나금지법안처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먹는 즐거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마리화나 쾌락의 권리도 마찬가지가 될수도 있지않을 까생각해봅니다. 실제로 미국에 이런 법안을 준비중인 분들의 강연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Podcast. Yale. 생존/배고픔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먹는 모든 음식/간식/디저트 등은 모두 toxic overdose 한 마약으로 (심하게 말하자면)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최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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