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심리
조영민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월등한 기량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입장 티켓이 없어서 직접 가서 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었지만, 올림픽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밴쿠버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전세계의 훌륭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시합이었다기보다는, 사뭇 아사다 마오 선수와의 한일전의 양상을 띄었기에 한국인으로서 경기를 지켜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는 마치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뻗어 접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와 같아서, 시인 조지훈이 지금 태어난다면 승무 대신 김연아의 연기에 감명을 받아 이 시를 지었으리라. 또한 재미있는 것은, 시장에서도 김연아 열풍이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인데, 김연아가 출연한 모든 광고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김연아가 착용한 옷이며 가방, 장신구 등은 따로 특별히 광고를 제작하지 않아도 엄청난 국민적 관심으로 인하여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모방심리가 작용한 것인데, 복잡한 논리적 판단없이 그냥 김연아를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비단, 그 옷과 장신구가 피겨스케이트에 문외한인 사람을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뛰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그녀의 도전 정신, 담대함, 우아함, 청순 등 소위 “쿨”한 키워드들을 자신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에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이며, 이를 통해 학습을 하고 소통을 하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음에 틀림이 없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모방심리 혹은 모방신경이 질병과 연관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흡연 문제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동건과 같은 멋진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한번쯤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 소비를 부추기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에서는 TV 방송에 흡연 장면을 내 보내지 않고 있다. 이와 덧붙여서 최근 TV 프로그램의 폭력성 선정성 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또 한가지는 먹는 것에 대한 모방심리이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남이 먹으면 나도 따라서 먹고 싶다는 것이고, 또한 멋진 몸매를 가진 남녀 배우나 모델이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런 걸 먹음으로써 저렇게 멋지게 될 수 있다고 비판적 사고없이 규정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식사 행동을 모방한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깨달은 사람은 몇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경우 특히 이런 따라하기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며, 음식의 경우 어떤 종류를 먹을 것인지 얼마나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방을 하게 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식사 테이블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한 두 사람이 앉아 있을 때보다 많은 양을 먹게 된다고 한다. 이는 식사 테이블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이 사람 저사람을 모방해서 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옆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 따라 먹고 싶어서 먹게 되고, 저쪽에 앉은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또 따라 먹고 싶다. 심지어는 같이 자리한 사람이 이것이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뷔페 식당에 가면 한 접시를 배불리 먹고도 옆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너 그거 어디서 가져 왔니?”라고 물어서 자신도 기어이 그 맛을 보고야 만다. 이것이 바로 식사에서의 따라하기 심리 즉 모방심리이다. 이러한 음식 섭취에 대한 모방심리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기업은 이것을 적극 활용한다. 광고에서 김연아가 마시는 우유를 슈퍼마켓에서 무심코 쇼핑 카트에 담게 되고, 밤 10시 이후 출출해지는 시간에 라면을 맛있게 먹는 광고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광고가 나오면 라면이나 맥주의 유혹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가도 한 순간 허물어지는 법이다.
최근의 한 연구를 보면 비만은 사회적 관계(social network)를 따라 전염성이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1971년부터 2003년까지 관찰해온 12,067명에 대해서 비만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따라 전파되고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즉, 한 사람이 체중이 증가할 경우 그의 친구, 형제 자매, 배우자, 이웃이 같이 체중이 증가하는지를 보았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어떤 한 사람이 비만해 질 경우 그의 친구가 비만해 질 확률은 57%나 증가하며, 그 형제는 40%, 배우자의 경우에는 37%가 증가한다. 그러나 근처에 살기는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밀접하지 않은 이웃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만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 즉, 이러한 연구 결과는 비만이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따라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고,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모방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한다.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으로 늘 존재해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같이 먹을 것이 풍족한 세상에서 적어도 비만을 증폭시키는 역할은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러 기업체에서 이러한 따라하기 심리를 이용해서 멋진 선망의 대상이 되는 탤런트, 배우, 운동 선수를 내세워 음식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지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스스로 자신만의 먹는 규칙을 수립해 놓고 지키는 도리 밖에 없을 것이다. 되물어보자.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먹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 음식을 영양 및 칼로리를 고려하고 결정해서 먹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따라 먹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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