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0일 목요일

인류의 이동과 현대의 질병

외국생활과 당뇨병 (1)
인류의 이동과 현대의 질병

*본 글은 2009-2010년에 걸쳐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일하면서 교민을 위해 작성한 원고임.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인류의 역사를 한 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09년 3월부터 UBC에 방문교수로 나와 있는 동안 인류학 박물관(Museum of Anthropology)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곳에서 소위 “퍼스트 네이션”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처음 이 곳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올 당시를 생각해 보니 그저 아득하기만 하였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이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과연 그 수수께끼를 현대 과학으로 풀 수가 있을까?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선사 시대 중의 선사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인지라 해답을 정확히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의 도움을 빌면 그 윤곽이나마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가 있다. 바로 몸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속의 발전소라고 불리는 것으로 “생명 에너지”와 “열”을 생산하며 세포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극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특이하게 자신의 유전정보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이 유전정보가 담긴 DNA는 오직 어머니의 것만 그 후손으로 전달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 유전정보에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서 후세에 전달되는데, 아버지의 것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이 돌연변이들을 역추적해 들어가면 억겁의 세월 속에 쌓인 유전학적 변이의 역사를 재현해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세계 각지의 토착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정보를 분석한 후에 이를 비교해 보면 어디서 출발하여 어떻게 변이를 거쳤는지를 알 수 있고, 이러한 변이의 출발점이 인류의 기원이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추정컨대 (그림 참조) 인류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되고, 전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소위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L형이라고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 변이를 거쳐서 L3라고 하는 유형이 아프리카를 벗어나는데 곧 이어서 M형과 N형으로 갈라지고 이 중에서 N형은 주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H, I, J, K, X 등의 유형을 낳고 일부 N형과 M형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한다. 이들은 A, B, C, D, E, F, G, N9, M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중에서 오직 A, C, D, G 형만이 시베리아를 거쳐 이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들은 추위에 잘 적응하였던 것 같다. 미토콘드리아가 생체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시에 “열”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들 미토콘드리아 유형들은 추위를 잘 견디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특히 A, C, D형은 현재의 베링 해협이 육로로 연결되었을 당시 시베리아 동쪽 끝에서 알래스카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이어서 B형이 해안 경로를 통해 독자적으로 아메리카로 들어온다. 또한 유럽으로 갔던 사람 중 X형을 가진 사람이 그린랜드를 거쳐서 아메리카로 들어온다. 구대륙에서는 나머지 미토콘드리아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시베리아 이남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B형은 주로 동남아 해안선을 타고 이동을 하였고, F는 현재의 태국 및 베트남에 주로 정착하였으며, 일부 N9형은 중국 북부 지방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로 진출한 다양한 미토콘드리아 유형들이 한반도에 모두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민족의 기원에 시베리아를 거친 북방민족과 중앙아시아 및 남방 경로를 이용한 민족이 모두 기여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림 첨부]

필자가 의사이면서도 주제 넘게 인류의 이동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하였는데, 과연 이러한 인류 이동의 역사가 인간의 질병과 관련이 있을까? 앞서 말한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은 알쯔하이머 병, 파킨슨 병, 생식 능력 등과 관련이 있음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가장 흔한 문명병 중의 하나인 당뇨병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박경수, 이홍규 교수와 함께 일본 동경도 노인총합연구소(東京都老人総合研究所)의 마사시 다나카 박사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특정 미토콘드리아 DNA형이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공통적으로 당뇨병 발병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한국인 당뇨병 환자 732명, 한국인 정상인 633명과 일본인 당뇨병 환자 1289명, 일본인 정상인 1617명을 대상으로 아시아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최신 기술을 통해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체 2021명의 당뇨병 환자 중 60명 (3%)에서 N9a라고 불리는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가지는데 비해 정상인 2250명 중 119명 (5.3%)에서 N9a 형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져, N9a 형을 가질 경우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가지는 경우에 비해 거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인류의 기원 및 이동의 분자 지표로 이용하여,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의 계보를 좇아보면, 중국에서 생겨난 N9a 미토콘드리아는 중국의 북부 지방으로 약 6000년 전에 이동하였고 약 2900년 전에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은 일본 혼슈 지방에서는 흔히 발견되나 일본 원주민인 “아이누”나 “류큐”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아서 한국을 거쳐 일본 본토로 유입되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인류 이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이 당뇨병에 대한 저항성이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추운 지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소비를 통해 열생산을 활발히 해야 하는데, N9a 형이 이러한 기능이 우수하여 자연 선택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불필요한 에너지를 미토콘드리아에서 태워버리는 역할을 통해 비만에 의해 유발되는 당뇨병을 예방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당뇨병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서 모계 역사를 찾아주는 상업적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별다른 과학적 근거 없이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하는 혈액형으로 건강, 성격, 운명을 논할 것이 아니라,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을 이용해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교민 여러분도 현재 거주하고 있는 환경이 자신의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에 적합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당뇨병에 쉽게 걸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을 가졌다면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로 그 위험을 떨쳐 버리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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