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췌장의 시대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줄임말로 1960년대에 기계와 인간을 결합하여 외계 탐험에 이용하자는 개념으로 처음 세상에 도입되었다. 영화 속의 대표적인 사이보그로는 총상을 입고 죽은 베테랑 형사를 로봇과 결합해서 재탄생시킨 “로보캅”이 있다. 하지만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넘어서서 실제로 인공심장, 인공팔, 인공망막, 인공와우(인공귀) 등이 임상 연구 중이거나 진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당뇨병은 현재 대한민국 성인의 10%가 앓고 있는 병으로 적절히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실명, 만성신부전, 하지절단, 심혈관질환 등 무서운 합병증을 불러 일으키는 병이다. 이러한 당뇨병은 그 직접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가진 호르몬인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 작용이 감소하여 혈당이 상승하는 병이다. 당뇨병은 크게 제1형 당뇨병과 제2형 당뇨병으로 구분된다. 먼저, 제2형 당뇨병부터 설명하자면, 당뇨병 중 가장 흔한 유형으로서, 비교적 나이가 많고 과체중 혹은 비만인 사람에서 생기는 병이다. 이 병은 인슐린 분비가 감소하거나 인슐린의 작용이 감소하여 생기고, 대부분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그리고 먹는 약으로 혈당이 조절된다. 반면, 제1형 당뇨병은 주로 어린 나이에 발생하며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자신의 면역 체계가 오작동하여 적으로 오인하여 파괴함으로써 생긴다. 그 결과로 몸 속에서 인슐린이 전혀 생산되지 않아 극심한 고혈당이 발생한다. 이 병은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일단 걸리면 죽는 끔찍한 병이었다. 그러나 1921년 캐나다의 프레데릭 반팅(1891-1941)이 토론토 대학에서 인슐린을 발견하여 치료의 길을 열면서, 제1형 당뇨병은 “걸리면 죽는 병”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완치는 아니더라도 “관리 혹은 치료가 되는 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당시 인슐린의 발견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어서 1923년에 반팅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자, 그러면 인슐린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인슐린은 위장 뒤쪽에 놓여 있는 췌장에서 만들어진다. 췌장은 주로 소화효소를 만들어서 십이지장으로 분비하는 외분비기능을 가지지만, 췌장의 1-2%에 해당하는 부분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만들어서 혈중으로 분비하는 내분비기능을 가진다. 이를 내분비 췌장이라고 부르고 전문용어로는 “췌도”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아일렛(islet)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일런드(island)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섬, 즉 “소도”의 개념이고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췌도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와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을 만드는 알파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3-4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환자에 따라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맞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사대신 인슐린 펌프를 이용해서 체내 대사에 필요한 기저 용량의 인슐린을 자동으로 주입하고, 또 식사량과 혈당에 맞춰서 용량을 계산하여 식사나 간식 때마다 추가로 인슐린을 주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슐린 펌프 치료를 하면 당뇨병이 완치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슐린 펌프를 조작하고 인슐린 양을 결정해서 정확히 주입하는 것은 많은 학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제1형 당뇨병의 치료가 이렇게 복잡하다면, 파괴되어 없어진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의 췌도를 이식하면 되지 않겠는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신장이 망가지면 남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고, 간이 못쓰게 될 경우 간이식을 받아서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제1형 당뇨병의 치료는 캐나다와 연관이 많은지, 인슐린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캐나다의 프레데릭 반팅이고, 췌도 이식법에서 혁신을 이룩한 사람인 제임스 샤피로 박사도 에드먼튼 소재 알버타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2000년에 7명의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 췌도 이식을 시행하여 인슐린을 맞지 않고도 혈당 조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체로부터 췌도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공급량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고,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하므로 야기되는 비용, 불편함, 부작용 등의 문제가 수반되며, 더욱이 이식된 췌도가 1년 이상 잘 기능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 등이 현재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하거나 동물(특히 돼지)의 췌도를 이용한 치료법이 많이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 실제 치료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그렇다면, 논의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인공 췌장(혹은 인공 내분비 췌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이미 인슐린 펌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혈당 측정기가 혈당을 일정 시간 간격으로 혹은 연속적으로 측정을 하고 이 결과를 펌프로 무선 송신하면 펌프에 있는 마이크로칩에서 계산식으로 인슐린 용량을 계산하여 몸 속으로 인슐린을 주입한다면 될 일이다. 이러한 개념은 실제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혈당을 연속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최근까지는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연속혈당측정기가 도입되어 진료에 사용되고 있는데, 아직 가격이 비싸고 측정 기술 면에서 보완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혈당 측정 결과를 입력했을 때 인슐린 용량을 결정할 마땅한 알고리듬이 없었다. 최근 몇몇 알고리듬이 개발되어 시험 중에 있는 상태이다. 자, 그러면 어설프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초기의 전화기를 기억하는가?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기억하는가? 뭔가 어설프지만 “가능성”을 넘어서 “실제”라는 것을 증명한 것들이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케임브리지 및 하버드 대학에서 이러한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수 분 간격으로 측정한 혈당 수치를 바탕으로 인슐린 주입량을 계산하여 인슐린 펌프를 작동시켰더니 혈당 조절이 정상에 가깝게 잘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특히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으로 인슐린의 반대 작용을 하는 글루카곤을 같이 주입함으로써 인슐린이 많이 들어갈 경우 발행하는 저혈당의 위험이 감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이러한 인공췌장이 실제 진료에 이용된다면 남의 장기를 이식하는 데 따른 문제점, 줄기세포 혹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여러 윤리적 문제와 안전 상의 문제점 등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제2형 당뇨병의 치료에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공 췌장 관련 공학적 기술이 속히 발전하여, 이러한 치료법이 곧 실용화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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