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0일 목요일

습관과 질병: 현대 질병의 새로운 패러다임

습관과 질병: 현대 질병의 새로운 패러다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조영민

평소에 전문학술지 투고 목적으로 논문을 쓰거나 논평을 쓰는 것 외에 따로 글을 써 본 경험이 적었던지라, 밴쿠버 중앙일보로부터 들어온 원고 청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구를 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침내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2010년 1월부터 8월까지 총 8회에 걸친 컬럼에서 알아두면 건강 관리에 요긴할 내용을 당뇨병과 비만을 전공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연재해 보고자 한다.
오늘 첫 번째 글에서는 “부중지어(釜中之魚)”라는 말을 화두로 잡았다. “가마솥 속의 물고기”라는 뜻인데, 그 속 뜻은 물고기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 넣으면 펄떡 뛰어 당장 빠져 나오려 하지만, 찬물이 담긴 가마솥 속에서는 불을 떼고 있는데도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천천히 진행되는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면 현대 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의미로 기업 등에서 흔히 쓰는 비유이다. 현대의 질병이 꼭 이러한 형국을 닮았다. 그래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에 대해서 “소리없는 살인자”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강백세(健康百歲)를 이루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그에 앞서서 우선 건강백세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애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답을 알기 위해 사망통계를 한 번 들여다 보자. 최근 수십 년간 한국의 사망 통계를 보면 감염병에 의한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에, 당뇨병이나 허혈성 심질환(급성심근경색 등의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여기에 건강백세로 가는 답이 있지 않을까? 서서히 진행하여 어느날 치명타를 날리는 이러한 질병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할까? 혹은 어떻게 이러한 질병을 이겨내야 할까? 치료를 하는 사람이나 치료를 받는 사람이나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표1. 1992년과 2008년의 국내 사망 원인 비교
순위 1992 2008
1 암 암
2 뇌혈관질환 뇌혈관 질환
3 심장질환 심장 질환
4 운수사고 자살
5 간질환 당뇨병
6 고혈압성 질환 만성하기도 질환
7 당뇨병 운수사고
8 만성하기도질환 간 질환
9 호흡기결핵 폐렴
10 자살 고혈압성 질환

[그림1]
최영주, 조영민 등 (당뇨병 연구 및 임상 치료 잡지에 2006년 게재)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는지 살펴 보자. 예컨대, 갑자기 세균성 신우신염(콩팥에 생기는 염증)이나 세균성 부비동염(소위 축농증) 등의 감염증에 걸려서 심하게 열이 나고 이에 따른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자. 병원을 찾을 것이고, 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항생제를 처방하면 용법에 맞춰 주사를 맞거나 약을 복용하면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 없이 낫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아침을 먹고 난 후로 배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으로 아프고, 식욕이 없으며, 복통이 점차 오른쪽 아랫쪽으로 옮겨가서 응급실을 찾아 급성 충수돌기염 (소위 맹장염)으로 진단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당연히 외과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수술로서 염증 부위를 제거한다면 완치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고전적인 질병들은 갑작스런 증상이 생기고 이로 인해 의사를 찾고 이후의 치료를 의사에게 맡기게 되면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현대의 질병인 당뇨병을 생각해 보자.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혈당이 높은 것을 알고 병원을 찾아서 당뇨병으로 확진을 받게 되면, 처방 받은 약을 먹고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고 이를 통해서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먹는 약으로 치료를 하다가 여의치 않는다면 인슐린 주사를 통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당뇨병은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먹는 것을 조심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만성병”의 특성인데,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있어서도 아직은 익숙지 않은 부분이다. 병이 나서 병원을 찾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완치가 되는 “급성 질환”에 익숙한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또한, 주위에서 흔히 보는 많은 만성 질환들은 세균이나 외상과 같이 단일 원인에 의한 경우보다는 여러 가지 유전 및 환경적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는데, 무엇보다도 개인의 생활습관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면, 당뇨병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핵심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만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를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비만의 경우 물리적으로 따진다면 에너지 불균형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즉, 섭취한 에너지가 소모한 에너지보다 많다면 지방으로 저장되어 살이 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에너지 섭취와 에너지 소모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되어 항상 일정한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비만한 사람의 경우 에너지 섭취가 에너지 소모보다 크다. 문제는 이러한 불균형이 매우 근소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방 1kg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7,700 칼로리가 필요하다. 자장면 한 그릇이 600 칼로리라면 13 그릇을 먹고 고스란히 살로 저장되어야 1kg이 찐다 (어제 저녁에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을 먹었는데 아침에 1kg이 불었다면, 살이 찐 것이 아니고 염분 축적에 의해 체수분량이 증가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따져볼 경우, 1년에 1kg의 체중이 증가했고 이것이 모두 체지방이라고 한다면, 고작 하루에 20 칼로리 정도가 축적된 것이다. 밥 1/3공기가 100 칼로리이고 사과 반 개가 50 칼로리이고 블랙커피가 5 칼로리 (한국에서 인기 있는 커피믹스는 하나에 약 50 칼로리)임을 고려한다면 정말 근소한 차이이다. 그래서, 비만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먹는 양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루에 20칼로리의 과잉이 1년이면 1kg의 체중 증가를 일으키고 10년이면 10kg이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살이 찌게 되고 예전에 맞던 옷이 맞지 않게 된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는 형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약간의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늘린다면 정상 체중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성 질환인 비만에 대한 접근법이 과거의 질병 모델인 급성 질병 모델에 적용하던 방법을 적용한다면 필연적으로 실패를 하게 된다. 1주일 혹은 몇 주 만에 체중 10kg 감량을 한다고 선전하는 접근이야 말로 비만의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주변에 이런 형식의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들은 설령 10kg을 감량했을지언정 수 개월 내에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소위 “요요 현상”을 경험한다.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되 섭취하는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식이요법이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 당분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야채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추천되는 방식이다. 운동의 경우, 모든 종류의 운동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운동은 근력, 지구력, 유연성의 3요소에 “재미”가 더해져서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최상이다. 따라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 등으로 운동을 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경우는 일상 생활 속에서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집안 일을 활발히 돕는 등 일상 생활 속에서의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작지만 큰 도움이 된다.
길게 설명했지만 요약하자면, 제목에서 말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의사 중심의 건강 관리”에서 “환자 중심의 건강 관리”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꼭 환자가 아니라도 건강할 때 본인이 본인의 “주치의”가 되어 주도면밀하게 잘 관리를 하여야 건강백세를 실현할 수가 있다. 어떻게 매일같이 신경 써서 식사나 운동 등을 챙길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100일만 실천해 보라. 습관이 되어 몸에 익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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