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을 재단하는 세상
기존 건물이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지 않거나 도로가 이용에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설계를 바꾸어 레노베이션을 하거나 길을 넓히든지 새로 닦는다. 음식을 먹고 소화 흡수하는 위장, 소장이 너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여 먹고 싶은 음식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고 잘게 부수어 몽땅 흡수하여 비만을 일으키고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을 일으킨다면? 위장을 새로 재단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수술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미 현실이 되었다. 바야흐로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소위 “베리아트릭 수술”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수술은 고도 비만 환자,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이 합병된 경우에 시행하게 되는데, 미국에서만 연간 2만 5천명의 환자에게 시술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위장우회술 (gastric bypass)인데, 이 수술은 위장을 두 분획으로 나누어서 식도 아래쪽에 바로 연결되는 30-50cc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음식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고, 소장을 중간에서 절단하여 위쪽으로 끌어올려 작게 분리된 위장 부분과 붙여 버린다 (그림 1). 이렇게 하면 고작 30-50cc 정도만 먹을 수 있게 되는데, 위장의 용량이 대략 1리터 정도이고 최대한 2-3 리터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적은 양임에 틀림없다. 결국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겨우 먹은 것도 소화 흡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십이지장과 공장(십이지장과 연결된 소장의 상부 및 중간 부분)의 많은 부분을 우회해 버리기 때문에 흡수되는 양이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많은 체중 감소가 일어나게 된다.
그림1. 위장 바이패스 수술 http://www.nlm.nih.gov/medlineplus/ency/imagepages/19268.htm
위장의 대부분과 십이지장 및 상부 소장을 음식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분리시키고 있다(희미한 색으로 표시된 부분). 또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위장은 고작 30-50cc밖에 되지 않는다.
베리아트릭 수술의 아이디어는 소장을 절제한 경우에 나타나는 심한 체중 감소가 일어남을 관찰함으로써 얻게 되었는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한 규모의 수술이지만 최근 수술 기법의 발달에 힘입어 복부에 작은 구멍 몇 개를 뚫고 복강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하게 되므로 시술 후에 통증이 적고 흉터는 거의 남지 않는다. 수술의 효과는 매우 극적이어서 체중의 약 30%가 수술 1년 이내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효과는 10년 후에까지 지속이 된다. 비만 관련 약물 치료의 경우 1년 동안 약 5-10% 정도의 체중이 감소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요요현상에 의해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랫 동안 약을 쓰더라도 점차 체중이 증가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히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만에 대한 우수한 효능의 비결은 위장 용량을 줄이고 소화 흡수가 많이 일어나는 부분을 둘러가게 하는 메커니즘도 있지만, 수술 후의 내분비 기능 변화에 따른 “식욕 억제” 효과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또한 놀라운 것은 비만한 당뇨병 환자에게 위장우회술을 시행하게 되면 혈당이 수술 후 몇 일 이내로 아무런 약을 쓰지 않더라도 정상화되는데, 지금껏 어떠한 당뇨병 치료 약제로도 얻을 수 없었던 효과이다. 즉, 당뇨병이 수술로 완치되어 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혈압, 고지혈증 등도 대부분에서 약을 쓰지 않더라도 조절이 되게 되어 비만과 관련된 합병증을 수술로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장 바이패스가 수술 규모가 크고 시술에 기술적인 숙련도가 매우 중요한 반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수술이 있는데,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이 바로 그것이다. 위장 상부를 올가미로 감아치듯이 밴드로 감아서 죄었다 풀었다하면서 먹는 양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그림 2). 예전에는 아예 턱을 철사로 붙잡듯 죄어서 잘 먹지 못하게 하거나 (jaw wiring), 위장 안에 풍선을 집어 넣어서 많이 먹지 못하도록 하는 시술(intragastric ballooning)도 시행했었는데,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도 이와 비슷하게 먹는 양을 제한하는 시술이지만 효과가 우수하고 비교적 안전하여 최근 매우 빠른 속도록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체중 감소 효과는 1년 이내에 원래 체중의 20% 정도가 감소하고 10년 후까지 관찰할 경우 다소 체중 증가가 이루어져서 원래 체중의 15% 선에서 감소된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그림 2.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
http://www.nlm.nih.gov/medlineplus/ency/imagepages/19497.htm
위장 상부를 올가미로 감듯이 죄어서 먹는 양을 제한하는 시술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지만, 소화흡수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실로 이러한 베리아트릭 수술의 효과는 놀랍다. 따라서, 많은 외과 의사들이 수술적 방법으로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위장우회술이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내분비적인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다면,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복용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고지혈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회장 (소장의 아래쪽 부분)을 우회하는 수술을 시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주 훌륭한 고지혈증 치료제가 개발되어 누구도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서 수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한 때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 흉곽성형술이라는 수술을 하여 갈비뼈를 들어내고 폐를 일부러 찌그러뜨렸던 적이 있었다. 훌륭한 결핵 치료제가 많이 개발된 현재, 이러한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고대사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앞으로 50년 이내에 위장우회술이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을 밝혀 이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여, 수술없이 당뇨와 비만을 완치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에 중심에 서서 질병 예방과 치료에 기여하고자 1920년대에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발견해 내고 1970년대에 장에서 분비되어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는 위장관 호르몬인 “GIP”를 개발해 낸 캐나다에 와서 연구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곧 역사의 한 부분이 될 날이 멀지 않았기를 소망해 보며 오늘도 연구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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