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0일 목요일

인공췌장의 시대

인공췌장의 시대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줄임말로 1960년대에 기계와 인간을 결합하여 외계 탐험에 이용하자는 개념으로 처음 세상에 도입되었다. 영화 속의 대표적인 사이보그로는 총상을 입고 죽은 베테랑 형사를 로봇과 결합해서 재탄생시킨 “로보캅”이 있다. 하지만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넘어서서 실제로 인공심장, 인공팔, 인공망막, 인공와우(인공귀) 등이 임상 연구 중이거나 진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당뇨병은 현재 대한민국 성인의 10%가 앓고 있는 병으로 적절히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실명, 만성신부전, 하지절단, 심혈관질환 등 무서운 합병증을 불러 일으키는 병이다. 이러한 당뇨병은 그 직접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혈당을 낮추는 작용을 가진 호르몬인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 작용이 감소하여 혈당이 상승하는 병이다. 당뇨병은 크게 제1형 당뇨병과 제2형 당뇨병으로 구분된다. 먼저, 제2형 당뇨병부터 설명하자면, 당뇨병 중 가장 흔한 유형으로서, 비교적 나이가 많고 과체중 혹은 비만인 사람에서 생기는 병이다. 이 병은 인슐린 분비가 감소하거나 인슐린의 작용이 감소하여 생기고, 대부분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그리고 먹는 약으로 혈당이 조절된다. 반면, 제1형 당뇨병은 주로 어린 나이에 발생하며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자신의 면역 체계가 오작동하여 적으로 오인하여 파괴함으로써 생긴다. 그 결과로 몸 속에서 인슐린이 전혀 생산되지 않아 극심한 고혈당이 발생한다. 이 병은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일단 걸리면 죽는 끔찍한 병이었다. 그러나 1921년 캐나다의 프레데릭 반팅(1891-1941)이 토론토 대학에서 인슐린을 발견하여 치료의 길을 열면서, 제1형 당뇨병은 “걸리면 죽는 병”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완치는 아니더라도 “관리 혹은 치료가 되는 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당시 인슐린의 발견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어서 1923년에 반팅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자, 그러면 인슐린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인슐린은 위장 뒤쪽에 놓여 있는 췌장에서 만들어진다. 췌장은 주로 소화효소를 만들어서 십이지장으로 분비하는 외분비기능을 가지지만, 췌장의 1-2%에 해당하는 부분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만들어서 혈중으로 분비하는 내분비기능을 가진다. 이를 내분비 췌장이라고 부르고 전문용어로는 “췌도”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아일렛(islet)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일런드(island)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섬, 즉 “소도”의 개념이고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췌도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와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을 만드는 알파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3-4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환자에 따라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맞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사대신 인슐린 펌프를 이용해서 체내 대사에 필요한 기저 용량의 인슐린을 자동으로 주입하고, 또 식사량과 혈당에 맞춰서 용량을 계산하여 식사나 간식 때마다 추가로 인슐린을 주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슐린 펌프 치료를 하면 당뇨병이 완치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슐린 펌프를 조작하고 인슐린 양을 결정해서 정확히 주입하는 것은 많은 학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제1형 당뇨병의 치료가 이렇게 복잡하다면, 파괴되어 없어진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의 췌도를 이식하면 되지 않겠는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신장이 망가지면 남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고, 간이 못쓰게 될 경우 간이식을 받아서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제1형 당뇨병의 치료는 캐나다와 연관이 많은지, 인슐린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캐나다의 프레데릭 반팅이고, 췌도 이식법에서 혁신을 이룩한 사람인 제임스 샤피로 박사도 에드먼튼 소재 알버타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2000년에 7명의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 췌도 이식을 시행하여 인슐린을 맞지 않고도 혈당 조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체로부터 췌도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공급량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고,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하므로 야기되는 비용, 불편함, 부작용 등의 문제가 수반되며, 더욱이 이식된 췌도가 1년 이상 잘 기능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 등이 현재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하거나 동물(특히 돼지)의 췌도를 이용한 치료법이 많이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 실제 치료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그렇다면, 논의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인공 췌장(혹은 인공 내분비 췌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이미 인슐린 펌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혈당 측정기가 혈당을 일정 시간 간격으로 혹은 연속적으로 측정을 하고 이 결과를 펌프로 무선 송신하면 펌프에 있는 마이크로칩에서 계산식으로 인슐린 용량을 계산하여 몸 속으로 인슐린을 주입한다면 될 일이다. 이러한 개념은 실제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혈당을 연속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최근까지는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연속혈당측정기가 도입되어 진료에 사용되고 있는데, 아직 가격이 비싸고 측정 기술 면에서 보완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혈당 측정 결과를 입력했을 때 인슐린 용량을 결정할 마땅한 알고리듬이 없었다. 최근 몇몇 알고리듬이 개발되어 시험 중에 있는 상태이다. 자, 그러면 어설프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초기의 전화기를 기억하는가?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기억하는가? 뭔가 어설프지만 “가능성”을 넘어서 “실제”라는 것을 증명한 것들이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케임브리지 및 하버드 대학에서 이러한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수 분 간격으로 측정한 혈당 수치를 바탕으로 인슐린 주입량을 계산하여 인슐린 펌프를 작동시켰더니 혈당 조절이 정상에 가깝게 잘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특히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으로 인슐린의 반대 작용을 하는 글루카곤을 같이 주입함으로써 인슐린이 많이 들어갈 경우 발행하는 저혈당의 위험이 감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이러한 인공췌장이 실제 진료에 이용된다면 남의 장기를 이식하는 데 따른 문제점, 줄기세포 혹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여러 윤리적 문제와 안전 상의 문제점 등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제2형 당뇨병의 치료에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공 췌장 관련 공학적 기술이 속히 발전하여, 이러한 치료법이 곧 실용화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방안의 코끼리

방 안의 코끼리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조영민

영어 표현에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것이 있다. 방 안에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 앉아 있으면 그것이 어찌 눈에 띄지 않겠는가? 즉, 너무나 분명하고도 명확한 명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으니, 애써 사람들이 이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것을 빗대어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른다. 당뇨병 연구를 하면서 이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게 된다. 4월 중순에 휘슬러에서 당뇨병 관련 기초 연구를 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서 컨퍼런스를 가졌다. 최신의 연구 기법과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열정적으로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였는데, 이 분야 과학의 발전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임상 진료에 적용되는 수준까지 개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연구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기초 과학의 토대 위에 임상 의학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기초 연구의 끝없는 도전으로 인류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온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학회장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불현듯 떠 올랐다. 당뇨병이라는 병의 발생 메커니즘이 워낙 복잡하고 그 기저에 있는 실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자들은 어느 한 부분을 부여 잡고 그것이 전체인 양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배를 더듬는 사람은 “벽”이라고 말할 것이고, 다리를 더듬는 사람은 “기둥”이라고 말할 것이며, 코를 더듬는 사람은 “호스”라고 말하고 있다. 잠시 코끼리 만지는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다면 “방 안의 코끼리”는 과연 무엇일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 방 안의 코끼리는 바로 다름 아닌 “생활 습관”이다. 1950년대 말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처음 당뇨병 진료를 시작할 당시 1년에 환자 수가 5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한국 성인 인구의 10%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적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당뇨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당뇨병의 폭발적 증가를 유도했을까? 필자가 국내 통계 자료를 통해 고찰한 결과 국내총생산의 증가와 발 맞춰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가? 잘 살게 되면서 당뇨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방 섭취율이 증가되는 것이 연관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칼로리 음식 및 서구화된 식생활과 맞물려 당뇨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승용차 보유 대수의 증가 및 TV 시청의 증가와 연관이 있었다. 이것은 운동 부족이 당뇨병 발병과 관련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유전자는 최근 몇 십년 사이에 절대 변화하지 않았다고 본다. 결국 환경의 변화, 생활 방식의 변화가 우리 국민을 당뇨병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통해 당뇨병의 발병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고 한다. 이러한 “신약”의 타겟은 무수히 많이 밝혀져 있다. 비만과 관련된 것, 인슐린 분비와 관련된 것, 인슐린의 작용 감수성과 관련된 것 등등 수많은 타겟들이 기초 연구 결과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 안의 코끼리”인 생활 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한 타겟이라고 말하면 별로 달가와 하지를 않는다. 의사들도 사실 크게 달가와 하지를 않는다. 삼척 동자도 아는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의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 진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환자의 생활 방식, 즉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담배가 해로우니 끊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환자가 담배를 바로 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생활 습관은 어차피 고치기 어려운 것이니, 당뇨병에 걸릴 사람의 습관을 고치는 대신 약을 먹도록 하여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쉬우면서도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리 추구 수단이자 재화 창출 수단이 되기 때문에 매력적이어서 이런 연구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분들에 대해서 전혀 악의는 없다 (물론 필자도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탄탄한 기초 과학의 토대 위에 임상 의학이 꽃을 피우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이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에 발표 된 당뇨병 예방 연구 결과를 보면,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위 “내당능 장애”라는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체중 조절, 운동, 식이 요법 등을 근간으로 하는 생활 습관 개선을 시행한 그룹과 당뇨병을 예방할 것으로 기대되는 약을 투여한 그룹을 비교해 보면 생활 습관 개선을 시행한 경우에 당뇨병을 약 60%에서 예방할 수 있었던 반면 약을 투여한 경우는 약 25-30% 수준에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생활 습관 개선 그룹에 속했지만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는 대부분 체중조절, 운동, 식이 요법 등을 잘 수행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자, 이제 당뇨병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방 안의 코끼리”가 무엇인지 분명하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명확하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게 하기 위해 의사 뿐만 아니라 정부, 사회 단체, 기업 등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제2의 금연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제2의 술잔 안 돌리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 행동 과학, 인지 과학을 하는 과학자 혹은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람의 생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기초 연구의 결과로 마법의 치료제를 개발하게 되는 날에는 병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세상이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어렵겠지만, 우리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건강 문제에는 무엇이 “방 안의 코끼리”인지 오늘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개인에 따라 “술”, “담배”, “과식”, “운동부족” 등등 코끼리들을 방안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애써 무시하시지 마시고 그 실체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시기를 당부드린다.

모방심리

모방심리

조영민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월등한 기량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입장 티켓이 없어서 직접 가서 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었지만, 올림픽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밴쿠버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전세계의 훌륭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시합이었다기보다는, 사뭇 아사다 마오 선수와의 한일전의 양상을 띄었기에 한국인으로서 경기를 지켜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는 마치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뻗어 접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와 같아서, 시인 조지훈이 지금 태어난다면 승무 대신 김연아의 연기에 감명을 받아 이 시를 지었으리라. 또한 재미있는 것은, 시장에서도 김연아 열풍이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인데, 김연아가 출연한 모든 광고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김연아가 착용한 옷이며 가방, 장신구 등은 따로 특별히 광고를 제작하지 않아도 엄청난 국민적 관심으로 인하여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모방심리가 작용한 것인데, 복잡한 논리적 판단없이 그냥 김연아를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비단, 그 옷과 장신구가 피겨스케이트에 문외한인 사람을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뛰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그녀의 도전 정신, 담대함, 우아함, 청순 등 소위 “쿨”한 키워드들을 자신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에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이며, 이를 통해 학습을 하고 소통을 하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음에 틀림이 없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모방심리 혹은 모방신경이 질병과 연관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흡연 문제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동건과 같은 멋진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한번쯤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 소비를 부추기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에서는 TV 방송에 흡연 장면을 내 보내지 않고 있다. 이와 덧붙여서 최근 TV 프로그램의 폭력성 선정성 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또 한가지는 먹는 것에 대한 모방심리이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남이 먹으면 나도 따라서 먹고 싶다는 것이고, 또한 멋진 몸매를 가진 남녀 배우나 모델이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런 걸 먹음으로써 저렇게 멋지게 될 수 있다고 비판적 사고없이 규정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식사 행동을 모방한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깨달은 사람은 몇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경우 특히 이런 따라하기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며, 음식의 경우 어떤 종류를 먹을 것인지 얼마나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방을 하게 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식사 테이블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한 두 사람이 앉아 있을 때보다 많은 양을 먹게 된다고 한다. 이는 식사 테이블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이 사람 저사람을 모방해서 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옆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 따라 먹고 싶어서 먹게 되고, 저쪽에 앉은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또 따라 먹고 싶다. 심지어는 같이 자리한 사람이 이것이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뷔페 식당에 가면 한 접시를 배불리 먹고도 옆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너 그거 어디서 가져 왔니?”라고 물어서 자신도 기어이 그 맛을 보고야 만다. 이것이 바로 식사에서의 따라하기 심리 즉 모방심리이다. 이러한 음식 섭취에 대한 모방심리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기업은 이것을 적극 활용한다. 광고에서 김연아가 마시는 우유를 슈퍼마켓에서 무심코 쇼핑 카트에 담게 되고, 밤 10시 이후 출출해지는 시간에 라면을 맛있게 먹는 광고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광고가 나오면 라면이나 맥주의 유혹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가도 한 순간 허물어지는 법이다.
최근의 한 연구를 보면 비만은 사회적 관계(social network)를 따라 전염성이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1971년부터 2003년까지 관찰해온 12,067명에 대해서 비만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따라 전파되고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즉, 한 사람이 체중이 증가할 경우 그의 친구, 형제 자매, 배우자, 이웃이 같이 체중이 증가하는지를 보았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어떤 한 사람이 비만해 질 경우 그의 친구가 비만해 질 확률은 57%나 증가하며, 그 형제는 40%, 배우자의 경우에는 37%가 증가한다. 그러나 근처에 살기는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밀접하지 않은 이웃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만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 즉, 이러한 연구 결과는 비만이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따라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고,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모방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한다.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으로 늘 존재해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같이 먹을 것이 풍족한 세상에서 적어도 비만을 증폭시키는 역할은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러 기업체에서 이러한 따라하기 심리를 이용해서 멋진 선망의 대상이 되는 탤런트, 배우, 운동 선수를 내세워 음식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지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스스로 자신만의 먹는 규칙을 수립해 놓고 지키는 도리 밖에 없을 것이다. 되물어보자.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먹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 음식을 영양 및 칼로리를 고려하고 결정해서 먹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따라 먹고 있는 것인가?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

기존 건물이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지 않거나 도로가 이용에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설계를 바꾸어 레노베이션을 하거나 길을 넓히든지 새로 닦는다. 음식을 먹고 소화 흡수하는 위장, 소장이 너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여 먹고 싶은 음식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고 잘게 부수어 몽땅 흡수하여 비만을 일으키고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을 일으킨다면? 위장을 새로 재단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수술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미 현실이 되었다. 바야흐로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소위 “베리아트릭 수술”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수술은 고도 비만 환자,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이 합병된 경우에 시행하게 되는데, 미국에서만 연간 2만 5천명의 환자에게 시술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위장우회술 (gastric bypass)인데, 이 수술은 위장을 두 분획으로 나누어서 식도 아래쪽에 바로 연결되는 30-50cc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음식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고, 소장을 중간에서 절단하여 위쪽으로 끌어올려 작게 분리된 위장 부분과 붙여 버린다 (그림 1). 이렇게 하면 고작 30-50cc 정도만 먹을 수 있게 되는데, 위장의 용량이 대략 1리터 정도이고 최대한 2-3 리터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적은 양임에 틀림없다. 결국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겨우 먹은 것도 소화 흡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십이지장과 공장(십이지장과 연결된 소장의 상부 및 중간 부분)의 많은 부분을 우회해 버리기 때문에 흡수되는 양이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많은 체중 감소가 일어나게 된다.



그림1. 위장 바이패스 수술 http://www.nlm.nih.gov/medlineplus/ency/imagepages/19268.htm
위장의 대부분과 십이지장 및 상부 소장을 음식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분리시키고 있다(희미한 색으로 표시된 부분). 또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위장은 고작 30-50cc밖에 되지 않는다.




베리아트릭 수술의 아이디어는 소장을 절제한 경우에 나타나는 심한 체중 감소가 일어남을 관찰함으로써 얻게 되었는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한 규모의 수술이지만 최근 수술 기법의 발달에 힘입어 복부에 작은 구멍 몇 개를 뚫고 복강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하게 되므로 시술 후에 통증이 적고 흉터는 거의 남지 않는다. 수술의 효과는 매우 극적이어서 체중의 약 30%가 수술 1년 이내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효과는 10년 후에까지 지속이 된다. 비만 관련 약물 치료의 경우 1년 동안 약 5-10% 정도의 체중이 감소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요요현상에 의해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랫 동안 약을 쓰더라도 점차 체중이 증가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히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만에 대한 우수한 효능의 비결은 위장 용량을 줄이고 소화 흡수가 많이 일어나는 부분을 둘러가게 하는 메커니즘도 있지만, 수술 후의 내분비 기능 변화에 따른 “식욕 억제” 효과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또한 놀라운 것은 비만한 당뇨병 환자에게 위장우회술을 시행하게 되면 혈당이 수술 후 몇 일 이내로 아무런 약을 쓰지 않더라도 정상화되는데, 지금껏 어떠한 당뇨병 치료 약제로도 얻을 수 없었던 효과이다. 즉, 당뇨병이 수술로 완치되어 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혈압, 고지혈증 등도 대부분에서 약을 쓰지 않더라도 조절이 되게 되어 비만과 관련된 합병증을 수술로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장 바이패스가 수술 규모가 크고 시술에 기술적인 숙련도가 매우 중요한 반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수술이 있는데,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이 바로 그것이다. 위장 상부를 올가미로 감아치듯이 밴드로 감아서 죄었다 풀었다하면서 먹는 양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그림 2). 예전에는 아예 턱을 철사로 붙잡듯 죄어서 잘 먹지 못하게 하거나 (jaw wiring), 위장 안에 풍선을 집어 넣어서 많이 먹지 못하도록 하는 시술(intragastric ballooning)도 시행했었는데,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도 이와 비슷하게 먹는 양을 제한하는 시술이지만 효과가 우수하고 비교적 안전하여 최근 매우 빠른 속도록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체중 감소 효과는 1년 이내에 원래 체중의 20% 정도가 감소하고 10년 후까지 관찰할 경우 다소 체중 증가가 이루어져서 원래 체중의 15% 선에서 감소된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그림 2. 복강경 위장 밴드 시술
http://www.nlm.nih.gov/medlineplus/ency/imagepages/19497.htm
위장 상부를 올가미로 감듯이 죄어서 먹는 양을 제한하는 시술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지만, 소화흡수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실로 이러한 베리아트릭 수술의 효과는 놀랍다. 따라서, 많은 외과 의사들이 수술적 방법으로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위장우회술이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내분비적인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다면,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복용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고지혈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회장 (소장의 아래쪽 부분)을 우회하는 수술을 시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주 훌륭한 고지혈증 치료제가 개발되어 누구도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서 수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한 때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 흉곽성형술이라는 수술을 하여 갈비뼈를 들어내고 폐를 일부러 찌그러뜨렸던 적이 있었다. 훌륭한 결핵 치료제가 많이 개발된 현재, 이러한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고대사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앞으로 50년 이내에 위장우회술이 비만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을 밝혀 이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여, 수술없이 당뇨와 비만을 완치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에 중심에 서서 질병 예방과 치료에 기여하고자 1920년대에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발견해 내고 1970년대에 장에서 분비되어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는 위장관 호르몬인 “GIP”를 개발해 낸 캐나다에 와서 연구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위장을 재단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곧 역사의 한 부분이 될 날이 멀지 않았기를 소망해 보며 오늘도 연구실로 향한다.

습관과 질병: 현대 질병의 새로운 패러다임

습관과 질병: 현대 질병의 새로운 패러다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조영민

평소에 전문학술지 투고 목적으로 논문을 쓰거나 논평을 쓰는 것 외에 따로 글을 써 본 경험이 적었던지라, 밴쿠버 중앙일보로부터 들어온 원고 청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구를 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침내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2010년 1월부터 8월까지 총 8회에 걸친 컬럼에서 알아두면 건강 관리에 요긴할 내용을 당뇨병과 비만을 전공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연재해 보고자 한다.
오늘 첫 번째 글에서는 “부중지어(釜中之魚)”라는 말을 화두로 잡았다. “가마솥 속의 물고기”라는 뜻인데, 그 속 뜻은 물고기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 넣으면 펄떡 뛰어 당장 빠져 나오려 하지만, 찬물이 담긴 가마솥 속에서는 불을 떼고 있는데도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천천히 진행되는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면 현대 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의미로 기업 등에서 흔히 쓰는 비유이다. 현대의 질병이 꼭 이러한 형국을 닮았다. 그래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에 대해서 “소리없는 살인자”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강백세(健康百歲)를 이루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그에 앞서서 우선 건강백세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애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답을 알기 위해 사망통계를 한 번 들여다 보자. 최근 수십 년간 한국의 사망 통계를 보면 감염병에 의한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에, 당뇨병이나 허혈성 심질환(급성심근경색 등의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여기에 건강백세로 가는 답이 있지 않을까? 서서히 진행하여 어느날 치명타를 날리는 이러한 질병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할까? 혹은 어떻게 이러한 질병을 이겨내야 할까? 치료를 하는 사람이나 치료를 받는 사람이나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표1. 1992년과 2008년의 국내 사망 원인 비교
순위 1992 2008
1 암 암
2 뇌혈관질환 뇌혈관 질환
3 심장질환 심장 질환
4 운수사고 자살
5 간질환 당뇨병
6 고혈압성 질환 만성하기도 질환
7 당뇨병 운수사고
8 만성하기도질환 간 질환
9 호흡기결핵 폐렴
10 자살 고혈압성 질환

[그림1]
최영주, 조영민 등 (당뇨병 연구 및 임상 치료 잡지에 2006년 게재)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는지 살펴 보자. 예컨대, 갑자기 세균성 신우신염(콩팥에 생기는 염증)이나 세균성 부비동염(소위 축농증) 등의 감염증에 걸려서 심하게 열이 나고 이에 따른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자. 병원을 찾을 것이고, 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항생제를 처방하면 용법에 맞춰 주사를 맞거나 약을 복용하면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 없이 낫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아침을 먹고 난 후로 배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으로 아프고, 식욕이 없으며, 복통이 점차 오른쪽 아랫쪽으로 옮겨가서 응급실을 찾아 급성 충수돌기염 (소위 맹장염)으로 진단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당연히 외과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수술로서 염증 부위를 제거한다면 완치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고전적인 질병들은 갑작스런 증상이 생기고 이로 인해 의사를 찾고 이후의 치료를 의사에게 맡기게 되면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현대의 질병인 당뇨병을 생각해 보자.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혈당이 높은 것을 알고 병원을 찾아서 당뇨병으로 확진을 받게 되면, 처방 받은 약을 먹고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고 이를 통해서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먹는 약으로 치료를 하다가 여의치 않는다면 인슐린 주사를 통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당뇨병은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먹는 것을 조심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만성병”의 특성인데,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있어서도 아직은 익숙지 않은 부분이다. 병이 나서 병원을 찾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완치가 되는 “급성 질환”에 익숙한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또한, 주위에서 흔히 보는 많은 만성 질환들은 세균이나 외상과 같이 단일 원인에 의한 경우보다는 여러 가지 유전 및 환경적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는데, 무엇보다도 개인의 생활습관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면, 당뇨병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핵심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만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를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비만의 경우 물리적으로 따진다면 에너지 불균형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즉, 섭취한 에너지가 소모한 에너지보다 많다면 지방으로 저장되어 살이 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에너지 섭취와 에너지 소모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되어 항상 일정한 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비만한 사람의 경우 에너지 섭취가 에너지 소모보다 크다. 문제는 이러한 불균형이 매우 근소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방 1kg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7,700 칼로리가 필요하다. 자장면 한 그릇이 600 칼로리라면 13 그릇을 먹고 고스란히 살로 저장되어야 1kg이 찐다 (어제 저녁에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을 먹었는데 아침에 1kg이 불었다면, 살이 찐 것이 아니고 염분 축적에 의해 체수분량이 증가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따져볼 경우, 1년에 1kg의 체중이 증가했고 이것이 모두 체지방이라고 한다면, 고작 하루에 20 칼로리 정도가 축적된 것이다. 밥 1/3공기가 100 칼로리이고 사과 반 개가 50 칼로리이고 블랙커피가 5 칼로리 (한국에서 인기 있는 커피믹스는 하나에 약 50 칼로리)임을 고려한다면 정말 근소한 차이이다. 그래서, 비만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먹는 양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루에 20칼로리의 과잉이 1년이면 1kg의 체중 증가를 일으키고 10년이면 10kg이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살이 찌게 되고 예전에 맞던 옷이 맞지 않게 된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는 형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약간의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늘린다면 정상 체중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성 질환인 비만에 대한 접근법이 과거의 질병 모델인 급성 질병 모델에 적용하던 방법을 적용한다면 필연적으로 실패를 하게 된다. 1주일 혹은 몇 주 만에 체중 10kg 감량을 한다고 선전하는 접근이야 말로 비만의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주변에 이런 형식의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들은 설령 10kg을 감량했을지언정 수 개월 내에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소위 “요요 현상”을 경험한다.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되 섭취하는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식이요법이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 당분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야채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추천되는 방식이다. 운동의 경우, 모든 종류의 운동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운동은 근력, 지구력, 유연성의 3요소에 “재미”가 더해져서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최상이다. 따라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 등으로 운동을 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경우는 일상 생활 속에서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집안 일을 활발히 돕는 등 일상 생활 속에서의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작지만 큰 도움이 된다.
길게 설명했지만 요약하자면, 제목에서 말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의사 중심의 건강 관리”에서 “환자 중심의 건강 관리”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꼭 환자가 아니라도 건강할 때 본인이 본인의 “주치의”가 되어 주도면밀하게 잘 관리를 하여야 건강백세를 실현할 수가 있다. 어떻게 매일같이 신경 써서 식사나 운동 등을 챙길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100일만 실천해 보라. 습관이 되어 몸에 익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구화와 비만 및 당뇨병

외국생활과 당뇨병 (2)
서구화와 비만 및 당뇨병

* 본 글은 2009-2010 년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교민을 위해 작성한 글임.

지난 편에 이어 다시 한 번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당뇨병은 유전적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세계 각 지역마다 그 병의 빈도(유병률)가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경우 현재 성인 인구의 10%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가령, 성인 인구가 4천만이라고 가정한다면 400만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다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지구 상에서 가장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종족은 누구일까? 글머리에 잠깐 복선을 흘렸듯이,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피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종족인데 이들의 당뇨병 유병률은 50%에 이른다. 즉, 길가는 피마 인디언 둘 중의 하나는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멕시코 산간 지방에 살고 있는 피마 인디언들은 6% 정도가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환경 탓이다. 멕시코 산간 지방에 살고 있는 피마 인디언들은 전통적 생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애리조나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피마 인디언들은 운동 부족과 고칼로리음식으로 인해서 주민 대다수가 매우 비만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들은 당뇨병이 우리 민족과 같은 일반적인 인구 집단에 비해서 5배 이상 높은 것일까? 바로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절약 유전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아주 오랜 옛날 인간이 수렵 및 채집을 통해 먹을 것을 얻을 당시에는 성공적으로 먹을 것을 확보할 확률이 높지 않았기에, 많이 먹을 수 있을 때 배불리 먹고 잉여 에너지를 지방 조직에 저장해 둘 수 있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매일 같이 배불리 먹고 운동은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도래하니, 자연히 살이 찌고 이에 따른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대륙 이주 과정은 어느 민족보다도 험난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이 왜 그토록 당뇨병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 그러면 남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 곳 캐나다에 이민 와 계신 우리 동포들의 건강은 어떠할까? 따로 한국인 캐나다 이민자에 대해서 연구된 바는 잘 알지 못하지만, 다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 민족은 얼마나 당뇨병이 잘 생기는 민족인가? 다행히도 일반적인 세계 평균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서양인의 경우에는 대다수가 심한 비만을 가진 경우에 당뇨병이 잘 생기지만 우리 나라 사람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그다지 비만이 심하지 않아도 당뇨병이 잘 생긴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복부 비만이 당뇨병 발병에 중요하다고 여겨져서 “뱃살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비만 클리닉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둘째, 이민자의 건강은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을까? 옛말에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것이 있다. 즉, 귤을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인데 똑 같은 종자 혹은 똑 같은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당뇨병에 관해서 따로 연구된 바는 없지만, 당뇨병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인 비만에 대한 연구를 잠깐 살펴 보도록 하자. 2005년도에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을 대상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78명과 한국에서 태어나서 이주해온 한인 218명을 비교하였는데 비만 혹은 과체중인 경우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의 경우 31.4%에 달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한인의 경우에는 9.4%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의 경우에는 미국식 식생활을 많이 닮아서 주로 고기나 지방이 풍부한 음식을 선호하고 채소 섭취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6년도에 캘리포니아 거주 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미국에 5년 미만으로 거주한 경우에 비해서 10년 이상 거주한 경우는 비만이 될 가능성이 3배 가량 높았고, 특히 남자 그리고 과음을 하는 경우에 그 위험이 높았다. 즉, 서양식 생활 방식에 많이 동화될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서 당뇨병 및 관련 질환도 분명히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이민 2세의 경우에 더욱 이러한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러면 어떻게 비만과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가? 바로 식생활 개선과 운동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솔깃한 답을 기대하신 분에게는 심히 실망스러운 답일 것이다. “파랑새”라는 동화책에서 행복을 전해 주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주인공들이 숱한 고생을 하면서 먼 곳을 떠돌았지만, 결국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 너무나 단순한 답이어서 매혹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운동 선수나 수험생처럼 결국은 “기본”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칼로리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름기가 적은 음식과 함께 야채를 많이 섭취하면 된다. 기름진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밥이 주된 칼로리 공급원이 되는 경우에는 아예 작은 밥그릇으로 바꾸어 적당량만 덜어 먹도록 하고 야채를 많이 섭취해서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것도 요령이 될 것이다. 매일같이 비가 오는 우기에는 밖에서 운동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분명 힘들다기 보다는 즐거운 일이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맑은 공기, 눈부신 햇살, 싱그런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여 보자. 즐거움과 행복이 찾아오고 비만과 당뇨병의 위험은 저만치 달아날 것이다.

인류의 이동과 현대의 질병

외국생활과 당뇨병 (1)
인류의 이동과 현대의 질병

*본 글은 2009-2010년에 걸쳐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일하면서 교민을 위해 작성한 원고임.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인류의 역사를 한 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09년 3월부터 UBC에 방문교수로 나와 있는 동안 인류학 박물관(Museum of Anthropology)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곳에서 소위 “퍼스트 네이션”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처음 이 곳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올 당시를 생각해 보니 그저 아득하기만 하였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이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과연 그 수수께끼를 현대 과학으로 풀 수가 있을까?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선사 시대 중의 선사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인지라 해답을 정확히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의 도움을 빌면 그 윤곽이나마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가 있다. 바로 몸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속의 발전소라고 불리는 것으로 “생명 에너지”와 “열”을 생산하며 세포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극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특이하게 자신의 유전정보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이 유전정보가 담긴 DNA는 오직 어머니의 것만 그 후손으로 전달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 유전정보에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서 후세에 전달되는데, 아버지의 것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이 돌연변이들을 역추적해 들어가면 억겁의 세월 속에 쌓인 유전학적 변이의 역사를 재현해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세계 각지의 토착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정보를 분석한 후에 이를 비교해 보면 어디서 출발하여 어떻게 변이를 거쳤는지를 알 수 있고, 이러한 변이의 출발점이 인류의 기원이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추정컨대 (그림 참조) 인류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되고, 전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소위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L형이라고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 변이를 거쳐서 L3라고 하는 유형이 아프리카를 벗어나는데 곧 이어서 M형과 N형으로 갈라지고 이 중에서 N형은 주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H, I, J, K, X 등의 유형을 낳고 일부 N형과 M형이 중앙아시아로 진출한다. 이들은 A, B, C, D, E, F, G, N9, M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중에서 오직 A, C, D, G 형만이 시베리아를 거쳐 이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들은 추위에 잘 적응하였던 것 같다. 미토콘드리아가 생체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시에 “열”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들 미토콘드리아 유형들은 추위를 잘 견디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특히 A, C, D형은 현재의 베링 해협이 육로로 연결되었을 당시 시베리아 동쪽 끝에서 알래스카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이어서 B형이 해안 경로를 통해 독자적으로 아메리카로 들어온다. 또한 유럽으로 갔던 사람 중 X형을 가진 사람이 그린랜드를 거쳐서 아메리카로 들어온다. 구대륙에서는 나머지 미토콘드리아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시베리아 이남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B형은 주로 동남아 해안선을 타고 이동을 하였고, F는 현재의 태국 및 베트남에 주로 정착하였으며, 일부 N9형은 중국 북부 지방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로 진출한 다양한 미토콘드리아 유형들이 한반도에 모두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민족의 기원에 시베리아를 거친 북방민족과 중앙아시아 및 남방 경로를 이용한 민족이 모두 기여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림 첨부]

필자가 의사이면서도 주제 넘게 인류의 이동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하였는데, 과연 이러한 인류 이동의 역사가 인간의 질병과 관련이 있을까? 앞서 말한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은 알쯔하이머 병, 파킨슨 병, 생식 능력 등과 관련이 있음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가장 흔한 문명병 중의 하나인 당뇨병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박경수, 이홍규 교수와 함께 일본 동경도 노인총합연구소(東京都老人総合研究所)의 마사시 다나카 박사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특정 미토콘드리아 DNA형이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공통적으로 당뇨병 발병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한국인 당뇨병 환자 732명, 한국인 정상인 633명과 일본인 당뇨병 환자 1289명, 일본인 정상인 1617명을 대상으로 아시아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최신 기술을 통해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체 2021명의 당뇨병 환자 중 60명 (3%)에서 N9a라고 불리는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가지는데 비해 정상인 2250명 중 119명 (5.3%)에서 N9a 형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져, N9a 형을 가질 경우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가지는 경우에 비해 거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인류의 기원 및 이동의 분자 지표로 이용하여,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의 계보를 좇아보면, 중국에서 생겨난 N9a 미토콘드리아는 중국의 북부 지방으로 약 6000년 전에 이동하였고 약 2900년 전에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은 일본 혼슈 지방에서는 흔히 발견되나 일본 원주민인 “아이누”나 “류큐”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아서 한국을 거쳐 일본 본토로 유입되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인류 이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N9a 미토콘드리아 DNA형이 당뇨병에 대한 저항성이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추운 지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소비를 통해 열생산을 활발히 해야 하는데, N9a 형이 이러한 기능이 우수하여 자연 선택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불필요한 에너지를 미토콘드리아에서 태워버리는 역할을 통해 비만에 의해 유발되는 당뇨병을 예방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당뇨병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서 모계 역사를 찾아주는 상업적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별다른 과학적 근거 없이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하는 혈액형으로 건강, 성격, 운명을 논할 것이 아니라,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을 이용해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교민 여러분도 현재 거주하고 있는 환경이 자신의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에 적합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당뇨병에 쉽게 걸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을 가졌다면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로 그 위험을 떨쳐 버리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이다.